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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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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
저자/출판사박삼철/도서출판 삼인
ISBN9788964362525
크기신국판mm
쪽수414p
제품 구성낱권
출간일2023-10-31
목차 또는 책소개상세설명참조




“못 보고 못 느끼면 잘 살기 어렵다”

미술사 최초로 얼굴을 그린 ‘조개 가면’에서
한말 이하응과 민영익의 ‘난초’에 이르기까지
선사와 고대·중세·근세를 거치면서 우리 선조들이 찍었던 전통예술의 정점 33개

지금 세상은 ‘양(量, Quantity)’과 ‘질(質, Quality)’을 넘어,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사는 ‘격(格, Dignity)’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공공 예술기획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박삼철의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한말에 이르기까지 시대정신과 생활상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우리 유물·유적 이야기 33편을 담았다. 박물관에서 못 보고 지나치는 것들, 보고도 지나치는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우리 삶 우리 예술 역사 안내서’인 이 책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삶, 즉 미맹(美盲) 탈출이 ‘잘 살기 위한’ 조건 중 하나임을, 풍부한 자료사진과 출중한 스토리텔링으로 전한다.
첫 번째 챕터인 ‘꿈꾸다! 선사시대’에서는 우리 미술사 최초로 얼굴을 그린 조개 인면상, 6천 년 전 돌을 깎아 만든, 손가락보다 짧은 여인상 등이, 두 번째 챕터 ‘뜻하다! 삼국시대’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이 보유하지 않은 고구려 유물에 남은 우리의 옛 상징 새, ‘세 발 태양 까마귀’ 등이 ‘미지의 과거’를 상상하게 하는 문을 연다. 세 번째 챕터 ‘욕망하다! 고려시대’에서는 태조 왕건상과 희랑조사상, 거대 석불 등이, 네 번째 챕터 ‘생생하다! 조선시대’에서는 조선의 골격 한양도성과 훈민정음 등이 지나간 옛이야기들을 우리의 현재와 연결하게 한다.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은 문화·예술 전 분야를 망라하면서 인문학적으로 통합하여 사유하게 하는, 아울러 널리 알려진 예술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고 질문하게 하는 논리를 치밀하고도 쉽고 재미있게 펼쳐 보여준다. 수천 년 전부터 아름다움을 삶의 근본으로 삼았던 우리의 뿌리를 눈앞에 생생히 그려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나아갈 방향까지 내다보게 하는 책이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혼돈과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이 시점에서, ‘살아갈 힘이자 살아온 삶 무늬’에 다름 아닌 아름다움의 길을 되걸어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자.

우리 민족에게는 3백 년마다 도약하는 문화의 리듬이 있다. 5세기에는 고대국가의 고유성이 무르익어 삼족오와 칠지도, 신라금관 같은 신물로 고대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8세기에는 통일신라의 기반이 잘 잡혀 성덕대왕신종과 불국사, 석굴암 같은 고전적 걸작들이 잇달아 나왔다. 11~12세기에는 대장경과 청자, 나전칠기로 기예의 세계 최고를 경험했다. 근세적인 민족 정체가 지금 현대까지 면면히 흐르는 틀을 완비한 15세기에는 우리 고유의 문자체계인 훈민정음, 신토불이의 『농사직설』과 『향약집성방』이 나왔다. 민족문화의 ‘벨 에포크Belle Epoque’라는 18세기에는 진경산수와 풍속화, 초상화 같은 전통회화의 혁신으로 미술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런 좋은 리듬을 그리며 21세기에도 세계문화에 기여하는 한민족의 문화도약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어떤 것일까? 배터리일까, 반도체일까? K-팝일까, K푸드일까, K-컨텐츠일까? 융합의 시대이니, 아마도 K라이프스타일이거나 K-컬처가 되지 않을까? (머리말에서)

다른 것을 같게 만들기보다 함께하게 만드는 것이 경영

문화는 다면을 속성으로 한다. 다양성은 문화의 생명이다. 문화는 하나를 놓고 경쟁하는 독존의 삶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많은 것들을 포용하는 공존의 가치로 삶을 동반한다. 고구려는 힘과 양의 문화, 신라는 태도와 질의 문화, 백제는 격의 문화를 지향하는 성향이 있다면서 삼국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 저자는, 경천사지 석탑과 고려 후기의 외래풍 문화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번 이 다양성 수용의 자세를 언급한다. “역사적인 ‘투쟁’은 정신을 강하게 하고 문화적인 ‘화쟁’은 정신을 유하게 한다. 음양과 강유는 세상을 경영하는 기본요소이다. 다른 것을 같게 만들기보다는 다른 것을 함께 하게 만드는 것이 경영 중의 경영이다. 획일성보다 다양성,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경영의 자원이다. […] 개체와 사회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섞였느냐, 안 섞였느냐?’의 구분보다 ‘투쟁이냐 화쟁이냐?’의 선택이 훨씬 중요하다. 순수와 불순의 구분으로 차이를 차별하는 ‘축출의 시대’를 끝내고, 화이부동으로 더불어 사는 다양성의 ‘축복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제대로 가치 매김 해야 할 옛 크리에이션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의 스토리텔링은 각 유물·유적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자세히 짚어냄으로써 익히 알려져 있던 작품들의 숨은 의의를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고려대장경이 ‘부처님의 신통력 빌어 국난 극복을 위해 만들었다’는 통념 때문에, 고려 크리에이터들이 지식정보 구축을 위해 기울였던 세계 수준의 체계성과 정확성, 예술성이 우리의 관심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고려대장경이 제작된 전후 사정을 꼼꼼히 설명하고 이 세계 최고의 대장경으로 지식강국, 출판강국의 바탕이 일찍이 이 땅에 마련되었음을 강조한다.
세종 이도의 훈민정음을 다룰 때에도 창제의 과학성과 혁명성, 예술성에 강조점을 두어 먼저 설명하고, 널리 회자되는 애민정신은 뒤에 언급한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가 온통 과학 그 자체라는 것, 뜻에서 소리로 글자의 중심이 넘어가는 것이 혁명적이라는 점, 모아쓰기 방식과 형태미가 탁월하다는 점 등이 이 책에서 부각된다. 또한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 이용이 당대 지식인 22명과 콜라보하여 만든 <몽유도원>의 일부임을 환기한다. “<몽유도원>을 시서화 문화철의 합작으로 다시 넓혀 볼 때 조선시대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가 제대로 보인다.” 요즘 주목받는 문화예술의 융복합, 콜래보의 생생한 역사와 전통을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 아울러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전국을 돌며 답사하여 만든 게 아니라, 서가에 앉아 선배 지도제작자들이 만든 지도와 지리정보를 비교·연구·편집해 더 나은 지도로 큐레이션한 것이라는 사실도 환기함으로써 당시 조선의 데이터베이스에 국토지리 정보가 충분히 쌓여 있었음을, 그만큼 대동여지도가 과학성과 효율성을 담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깨진 관계를 되돌리는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 옛 아름다움은 우주의 신비를 참되고 선하며 아름답게 드러내고자 했다. ‘진’은 생명의 원리에 충실하게, ‘선’은 생명의 순리에 성실하게, ‘미’는 생명의 문리에 견실하게 참여했다. ‘진선미’의 정립이 우리 삶의 원초적인 욕구였다. 그런 진선미의 관계가 절단났다. ‘분할통치’의 근대에 와서다. 사람과 물건, 시․공간 모두 조각내는 근대. 진은 헛똑똑이의 겉가량에 빠지고, 미는 성형하는 겉멋이 대종이고, 선은 착한 척하는 겉시늉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 따갑다. 되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만들까? 얼마나 살까?’ 하는 사물의 질문을 ‘어떻게 살까?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사람의 발문으로 되돌려야 한다.” 『다시 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읽는 것은 우리의 먼 뿌리부터 새겨진 아름다움을 되걸어볼 기회인 동시에,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의 이정표를 제대로 되짚어볼 기회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사는 삶, 진정으로 잘 사는 삶은 그 되걸어보고 되짚어보기가 전제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차례

머리말 아름다움의 길 앞에서

꿈꾸다! 선사시대
[女] 신이시여, 신이시여, 여신이시여
부산 동삼동 출토 조개 인면상과 울주 신암리 출토 여인상
[男] 그가 오셨다: 족장들의 궐기
반구대 암각화와 농경문 청동기
[生] 메멘토 모리
영혼의 영원한 집, 돌무덤과 독무덤
[神] 하늘에서 땅으로의 비행기표
청동검, 청동거울과 청동방울

뜻하다! 삼국시대
[軸] 날자, 날자, 한 번 더 날자꾸나! 세발 태양새야!
고구려 삼족오: 진피리 7호분 금동장식과 오회분 4호묘 벽화
[格] 너무나 문화적인 백제
칠지도와 서산마애삼존불, 백제금동대향로
[冠] 군자는 죽어도 관을 벗지 않는다
황남대총 금관, 신라 김씨 왕들의 세계수
[本] 외떨어진, 그러나 잘 떨어진 신라 문화, 토우
삶과 사랑을 담은 고대 신라의 타임캡슐
[塔] 차안에서 피안으로 오르는 계단, 불탑
한국 고전 탑3: 정림사 탑, 감은사 탑, 불국사 탑
[相] 그리워 그리는 임이시여!
삼화령 아기부처, 미륵반가사유상, 석굴암 본존불
[覺] 따로 또 같이
‘아방가르디스트’ 원효의 무애, ‘타이포그래퍼’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
[智] 예술과 과학의 기꺼운 동행,
석굴암과 성덕대왕신종

욕망하다! 고려시대
[人]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태조 왕건상과 희랑조사상
[場] 변죽을 울리다
지방의 거대 석불들: 논산 은진미륵, 파주 용미리 석불, 안동 제비원 석불
[慾] 나는 소망한다
사경변상도, 수월관음도, 아미타삼존내영도
[品] 이거 물건이네!
고려청자, 나전칠기, 입사동기, 천하명품 3종 세트
[知] 통하였느냐?
고려 지식 정보 큐레이션의 견본, 고려대장경
[技] 살어리 살어리랏다, 그 집에 살어리랏다
최순우의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홍준의 수덕사 대웅전
[樂] 반려하다
삶을 기껍게 동행하는 고려시대의 완물들
[風] 호로자식을 위하여
경천사지 석탑과 고려 후기의 외래풍 문화재들
고려 에필로그—제왕의 그림, 제왕의 사발

생생生生하다! 조선시대
[城] 조선의 골격을 짓다
한양도성과 설계자 삼봉 정도전
[字] 한민족 최고의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션,
세종 이도와 훈민정음
[肖] 존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성계 어진, 송시열 초상, 윤두서 자화상
[望] 말하는 이 알지 못하고, 아는 이 말하지 않는다.
조선의 진삼절 몽유도원
[圖] 도모하고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도모한다.
이황의 병도幷圖와 신신사임당의 묵도墨圖
[痕] 칼과 몸으로 전장하고 붓과 말로 전쟁했다.
삼청첩, 조종암, 화양계곡+만동묘
[眞] 마침내 내가, 나를 그리다, 18세기 진경시대 (I)
정선이 열다: 금강내산총도와 인왕제색도
[實] 마침내 내가, 나를 그리다, 18세기 진경시대 (II)
김홍도가 맺다: 옥순봉도, 소림명월도, 병진년화첩
[俗] 세상 속으로 자맥질하는 그림, 풍속화 (I)
더욱 우리답게, 더욱 살갑게: 마상청앵도와 미인도
[情] 세상 속으로 자맥질하는 그림, 풍속화 (II)
더욱 살갑게, 더욱 진솔하게
[凡] 중인들 마침내 중심에 서다
시인 천수경과 화가 조희룡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vs 김정희의 <세한도>
[地] 나를 열고 세계를 맞는 위방지도
전통 지리학의 절정, <대동여지도>
[終] 바람이 불면 풀은 눕는다.
전통미술의 일단락: 석파 이하응과 영미 민영익의 난초



지은이 소개 - 박삼철

부산 태생으로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예술에 문외한이었다가, 첫 직장인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예술과 인연을 맺고 푹 빠져 전직까지 하고는 예술기획으로 살아간다. 큐레이터로 광주비엔날레 <상처>, 서울시립미술관 <도시와 영상>전, 흥국생명 일주아트하우스 등의 기획, 운영에 참여했고, 국내에 공공미술을 도입하는 운동과 저술도 함께했다.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도시갤러리’ 추진단장을 맡았다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 준비에 투입돼 간송미술관 DDP 유치와 공동전시를 이끌었다. DDP에서 근무하면서 도시디자인 기획자로 공공디자인 〈박백창신: 박수근과 백남준을 기억하는 길〉 시행, 〈박수근 50주기 특별전〉 공동기획에 참여했고, 2008~2009년 《한겨레신문》에 「박삼철의 도시디자인탐험」을 연재했다.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 위원, 충남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 KPA 기획조정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 『나는 도시 마실 간다』(2021), 『도시 예술 산책』(2012), 『왜 공공미술인가』(2006), 『미술 공간 도시』(2000, 번역), 『에로스 바로보기』(1996, 공저) 등이 있다.



본문 속으로

6천여 년 전 이걸 만들고 기도했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과 정성스러운 솜씨를 생각하면 홀대에 가깝다. 이름도 그렇다. 가면? 여인상? ‘김씨!’, ‘박가!’만 해도 웬만한 사람들은 하대한다고 싸움으로 맞선다. 여인상은 ‘아줌마!’와 마찬가지로 몰인격沒人格, 무정체無正體의 호칭이다. 수천 년을 살아왔고 여전히 풍요롭고 아름다운 ‘신+인격’인데, ‘가면’, ‘여인’이라 부름은 그들의 아름다움에 눈뜨지 못한 미맹美盲, 그들 문화의 시원성을 못 읽는 문맹文盲의 자백과도 같다. 이름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드리자. (‘신이시여, 신이시여, 여신이시여—부산 동삼동 출토 조개 인면상과 울주 신암리 출토 여인상’ 중 22쪽)

청동거울은 세계적으로 많지만, 이렇게 정치한 문양을 가진 경우는 드물다. 실측에 의하면, 지름 21.2cm의 이 거울에는 0.22mm 간격, 0.7mm 굵기의 직선 1만 3,000여 개와 동심원 100여 개가 ‘주조’되었다고 한다. <정문경>을 현대기술로 재현하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CAD 프로그램으로도 제도하기 힘든 문양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반듯한 원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들을 촘촘하게 모아 이렇게 정교한 삼각형들을 만들었을까?
답은 ‘어떻게?’에서보다 ‘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풍요 속의 현대인들은 ‘할 수 있나, 없나?’ 하는 능위를 따져 인간적인 차원에 갇히지만, 선사인들은 ‘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당위로 해 초인간적인 차원을 갖춘다. 신을 만나야 했고 하늘을 보아야만 했다. 태양을 향한 강인한 의지가 초나노 기술을 이끌어냈다. (‘하늘에서 땅으로의 비행기표—청동검, 청동거울과 청동방울’ 중 50-51쪽)

월드컵 한일전이 열렸을 때는 축구 전쟁 말고 삼족오 논쟁도 치러야 했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엠블럼은 호랑이, 일본 것은 삼족오 야타가라스, […] 운동장에서 일본 문양들을 본 누가 ‘일본이 우리 상징 삼족오를 도둑질했다’고 외쳤다. […] 소유냐, 존재냐? 문화를 살필 때는 소유보다 존재를 물을 때 더 문화답다. 외향적 분노는 내성적 결핍의 분풀이로 생길 때가 많다. 삼족오 논란은 삼족오가 우리 안에 잘 살지 못하는 결핍의 분풀이일 수 있다. 분풀이 아니라 본풀이 할 때 문화답다. 삼족오의 본풀이는 태양 까마귀의 유래와 갈래가 어떻게 되고, 변천 내력이 어떤지를 살피면서 좋아하고 아파하는 속풀이다. (‘날자, 날자, 한 번 더 날자꾸나! 세발 태양새야!—고구려 삼족오: 진피리 7호분 금동장식과 오회분 4호묘 벽화’ 중 56-57쪽)

토우는 5~6세기의 신라인들이 무덤 부장품으로 넣는 그릇에 붙인 5~6cm 크기의 흙 인형이다. 토우는 존재 자체가 매혹이다. 맨손으로 찰흙을 조몰락거리다가 쓰윽 꼴을 잡고 슬쩍 금을 그었을 뿐인데, 피카소 저리 가라 하는 표현 세상이 열린다. 묘사된 세상도 파격이다. […] 이런 예술이 고구려와 백제, 가야에는 없다. 외국에서도 찾기 힘들다. 신라 고유의 토착 예술형식이다. 언젠가 여건이 되면 신라토우박물관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외떨어진, 그러나 잘 떨어진 신라 문화, 토우—삶과 사랑을 담은 고대 신라의 타임캡슐’ 중 89-90쪽)

비례(symmetry)와 위례(asymmetry). 거대 석불은 못 해서 안 한 게 아니라 하지 않고자 해서 안 했다. 세계관이 다르다. 거대 석불로 좇은 고려의 새 트렌드는 죽은 정제보다 산 야성, 가장된 시머트리보다 거칠지만 장쾌한 어시머트리를 추구했다. 고려의 거대 석불들은 석굴암 본존불의 생생하고 균형 잡힌 표현보다 스톤헨지 같은 거대하고 거룩한 상징성과 신비감을 의도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고려는 종착역이 아니라 시발역의 문화를 의도했고, 거대 석불은 그런 고려 문화의 마중물이다. 못생겼지만 잘난, 불균형이지만 형편에 잘 맞는 고려 전기 거대불상들은 제대로, 제멋대로 부린 고려의 새 문화다. (‘변죽을 울리다—지방의 거대 석불들: 논산 은진미륵, 파주 용미리 석불, 안동 제비원 석불’ 중 174쪽)

‘거란 침입 때 큰 서원을 세워 초조대장경을 찍으니 외적이 물러났던 것처럼 재조도 몽골을 물리치게 해달라.’ 그런데 그 앞에는 ‘몽골이 대장경을 태워버렸고, 금구옥설은 어떤 경우든 훼손되면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이 먼저 나온다. 이 부분을 쉬 지나치는데, 이 믿음에 이어 그것의 선과로 외적 격퇴, 왕후와 왕자의 만수무강, 국운 만세를 기원했다. […] 즉 지식정보체계의 재건이 제1이고 그 가피로 얻는 신통력은 제2다.
이렇게 봐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고려를 쳐들어온 거란이나 몽골 모두 불교국가였고 대장경을 만드는 일을 국가사업으로 잡았다. 침략받는 고려만 부처께 발원하고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하는 외적들도 발원하고 쳐들어왔다. 그럼, 부처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하나? 당시는 국제화 시대를 맞아 각 나라들이 영토와 무역 경쟁 말고도 누가 더 많고 더 좋은 불설佛說을 갖느냐 하는 지식정보 경쟁을 펼쳤다. (‘통하였느냐?—고려 지식 정보 큐레이션의 견본, 고려대장경’ 중 199쪽)

서양건축은 기둥 하나만으로도 도리안식, 이오니안식, 콜린트식 등 줄줄이 나오고, 건물 꼴로는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로코코, 아르누보, 모더니즘 등 잇달아 나온다. 서양건축은 형태적이고 양식이 유행으로 명멸하는데, 하나같이 다른 것을 추구하고 만들어낸다.
우리 건축은 한결같다. 서양이 중시하는 개별적인 것을 지양한다. 공간과 시간과 인간의 조화, 문文/질質, 표表/의意, 음/양의 혜화같이 총체를 지향한다. 형태에 집착하지 않고 구조에 우직하게 매달린다. 그러다 보니, 우리 건축사에는 양식 진전이 없다고 자조하는 시각이 있다. 자잘하면 잘 보이지만, 큰 것은 잘 안 보인다. 잘 볼 일이지 자조할 일은 아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그 집에 살어리랏다—최순우의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홍준의 수덕사 대웅전’ 중 220쪽)

한자문화 3천 년 동안 뜻이 그리 중요했는데, 뜻을 버리는 게 쉬울 리 없다. 최만리 같은 유자들의 훈민정음 반대 이유 중 하나가 ‘뜻없음’이었다. […] 뜻은 사상 관련으로 언외, 뇌 안의 문제다. 문자는 음운과 표기에 대한 이슈를 따라야 한다. 이를 의식한 세종 이도는 뜻을 과감하게 잘라버렸다. […] 글자를 못 알아들어 ‘뭐라고? 다시’ 하면 한자는 그림을 그려야 하고 알파벳은 스펠링을 또박또박 불러줘야 하는데, 한글은 한 번 더 말해주면 된다. […] 모아쓰는 한글 방식은 풀어쓰는 알파벳과 비교해 공간 압축능력이, 한자나 일본어와 비교해 입력속도가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 그런데도 한글은 못 쓰는 게 없다. 간명한 원리 아래에서의 전환과 확장, 조합이 무한해 어떤 소리도 표현할 수 있다. 정인지가 훈민정음 후서에서 표현한 자부심,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 개의 짖음과 같은 것도 다 능히 쓸 수 있다”는 그냥 피우는 거드름이 아니었다. (‘한민족 최고의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션—세종 이도의 훈민정음’ 중 271-272쪽)

옛 그림 중에서 가장 귀한 것 하나를 고르라면 <몽유도원도>가 제일 많이 나온다. […] 그런데 38.7×106.5cm짜리 그림을 조선 최대 거작이라고 받들면서 시서화 합작으로 된 전체 작품 길이가 1,977cm인 것은 덜 본다. 화가 안견이 3일 만에 완성한 그림이라고 놀라워하면서도 문인들과의 합벽合壁을 완성하는 데 3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소홀히 한다. 그림이 일류라는 것은 밝히면서도 시서화 삼절이라는 사실은 덜 밝힌다. 위대한 화가가 남긴 최고의 역작이라면서도 문화에서도 ‘개국’하고자 애썼던 당대 지식인들의 합작,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덜 친다. 맹목盲目 아닌가? (‘말하는 이 알지 못하고, 아는 이 말하지 않는다—조선의 진삼절, 몽유도원’ 중 288쪽)

이황과 이이의 쌍은 많이 다뤘다. 성리학의 조선화를 이끈 두 정상이다. 이황과 신사임당이라면 어떨까?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이황은 당시 지배체제가 천대하던 그림으로, 신사임당은 당시 사회에서 천대받던 여성성과 그림으로 ‘위성’을 이루었다. 나이도 세 살 차이여서 이황과 이이 쌍보다 이황과 신사임당 쌍이 이연연상으로 어울리는 구석이 많다.
이황은 『성학십도』에서 그림으로 사유하자는 ‘인도치사因圖致思’를 말했는데, 두 사람은 ‘그림을 통해 성인의 사유에 이르는 길’을 개척한 시대의 동반이다. 이황은 성인을 기르기 위한 혁신적인 다이어그램 책 『성학십도』를 만들었다. 신사임당은 ‘여성女聖’ 태임太任을 본 삼아 성인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남자의 묵도墨圖를 압도하는 시서화를 창출했다. (‘도모하고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도모한다—이황의 병도와 신사임당의 묵도’ 중 299-300쪽)

스케일과 디테일, 세와 질의 대비에서 보듯이 정선의 진경산수는 주역의 ‘대대待對’를 적극 시각화했다. 주역에 능통하고 주역을 응용해 진경을 창안했다는 소리를 듣는 배경이다. 화면 오른쪽은 억센 뾰족산이 보는 눈을 콕콕 찌르고 왼쪽은 부드러운 흙산이라 손으로 어루만지고 싶다. 서릿발식 준법과 점묘식 묵법, 수직의 필筆과 수평의 묵墨, 흑백, 명암, 대소의 요소들이 결연하게 맞섰다가 혼연하게 마주 선다. 주역과 산수는 중국 것이지만, 그것을 삶의 고갱이로 끌고 온 것은 조선 성리학, 그림으로 옮긴 것은 정선의 진경이다. […] 정선의 혁신은 그림에 지도의 방법까지 끌어들였다. 조선시대에는 ‘그림이 지도 같다’ 하면 화가에게 욕이다. 땅길과 물길이 첩첩이 쌓인 바위나 계곡 사이를 동정맥처럼 흘러간다. 산봉우리와 폭瀑, 연淵, 대臺, 그리고 사찰과 누정 같은 곳에 지명을 표기했다. 산수와 지도를 결합해 중국식의 관념적인 그림을 넘어 체험하는 진경을 창출한 것이다.
이처럼 36세 작 <금강내산총도>는 민족의 얼굴 금강산을 붙잡고 우리 풍토에 맞는 고유화법을 찾는 코딩이 가득하다. 이 코딩을 타고 우리 회화는 중국식 화법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나를 그리다, 18세기 진경시대 (I)—정선이 열다: 금강내산총도와 인왕제색도’ 중 329-330쪽)

김홍도 이전에는 누구도 그리지 않던 소재인 범상凡常과 비경非景을 그는 작심하고 그렸다. 이 작품으로부터 지극히 평범한 것도 비범한 것이 되는 새로운 진경이 시작된다. 우리에게도 전근대의 산수를 넘어 근대적인 풍경이 열린다. 또 하나의 ‘시각 혁명’이다. 정선은 우리 식 진경의 시작으로 혁명했고, 김홍도는 우리 식 풍경의 시작으로 혁명했다. 둘의 혁명으로 18세기 회화는 우뚝 설 수 있었다. (‘마침내 내가, 나를 그리다, 18세기 진경시대 (II)—김홍도가 맺다: 옥순봉도, 소림명월도, 병진년화첩’ 중 347쪽)

『대동여지도』의 혁신은 지도의 용도와 형식이 바뀌는 전환의 솔루션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김정호 이전의 지도는 글 중심으로 된 책인 지지가 주를 이루었다. 이 지리정보는 상민들에게는 ‘불편不便’하고 ‘불이不易’하다. 가독성이 낮고 돌아다니면서 봐야 하는 휴대 편이성도 낮아 상민들에게 지지가 애물단지다. 위방지도의 지도를 찾았던 김정호는 ‘불이’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language)의 문제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휴대(mobile)의 문제로 푼다. 상민들에게 어려운 문해(literacy)를 도해(visual literacy)로 전환해 지도의 명시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휴대의 불편은 불경에 주로 쓰는 ‘인鱗’이라는 장정 방식을 끌어들였다. 접으면 군현지도, 펼치고 이으면 전국지도가 되어 휴대하기도 좋으면서 정보량도 줄지 않아 편의성이 대폭 강화되었다. (‘나를 열고 세계를 맞는 위방지도—전통 지리학의 절정, 대동여지도’ 중 396-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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