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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 기후 생태 위기에 대한 비판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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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 기후 생태 위기에 대한 비판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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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 기후 생태 위기에 대한 비판과 전망
저자/출판사이송희일/삼인
ISBN9788964362709
크기152*225mm
쪽수527p
제품 구성낱권
출간일2024-06-25
목차 또는 책소개상세설명참조



‘자동차는 춤을 추지 못한다. 자본은 춤을 추지 못한다.
자연의 피조물만 춤을 춘다.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곳은 이미 죽은 행성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숨겨진 정치학과 지워진 이름들을 소환하는
‘기후위기 세계사’


자연의 재앙으로 이해되곤 하는 ‘기후위기’가 실은 가부장제 재앙이고, 자본주의 재앙이며, 인종주의 재앙, 다시 말해 명백한 정치적 재앙이라는 것을, 시공간을 넘나드는 방대한 자료와 풍부한 현장 사례, 치밀한 분석으로 논증하고 이 재앙에 어떻게 대처할지 전망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는 SNS와 강연·칼럼 등을 통해 기후-생태 이슈에 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온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첫 단독저서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 언급되는, 해수면 상승으로 침식되어가는 벵골만 땅에서 농사도 짓지 못하고 타지로 떠나지도 못한 채 생계를 위해 삼림자원을 찾다가 숲속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방글라데시 ‘최하층’ 주민들은 전 세계 수많은 기후 난민들의 비극을 대변할 뿐 아니라, 지구 행성의 현재 난국을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즉 작가는 그들을 ‘기후위기 피해자’로 정체화하는 대신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오랜 세월 홍수와 퇴적이 반복돼 비옥하기로 유명한 삼각주인 이곳의 물 재난은 정말 기후재난인가? 어째서 이곳의 호랑이 보호구역 지정으로 가난한 이들이 숲을 빼앗겼는가? 질문은 확장되어 이어진다. 한국인들이 화력발전소의 탄소 배출에 무심한 채 커피값 상승 소식에 짜증내는 동안, 왜 방글라데시의 하층민들은 목숨을 걸고 숲으로 들어가야 할까? 방글라데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015%의 책임밖에 없는데 왜 저렇게 기후 격변에 ‘부자 국가’보다 먼저 시달려야 할까?
‘기후-생태 위기에 대한 비판과 전망’이라는 부제가 달린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는 ‘기후위기의 세계사’, 그리고 ‘기후정의운동의 세계사’라 할 만한 충실한 지도를 제공하는, 지금 이 사회에 긴요하게 읽힐 필독서로, 총 7장으로 구성된다. 1장 ‘물 뜨는 여자들과 유칼립투스’에서는 인위적으로 자연 흐름을 변경한 자본주의적-식민주의적 수문학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2장 ‘기후위기의 심리학’에서는 정상성 편향, 기후우울증 등 기후위기를 둘러싼 집단 심리를 이야기한다. 3장 ‘이메일을 지우면 산불이 꺼질까?’에서는 기후위기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이데올로기와 억만장자들의 환경주의를 짚어본다. 4장 ‘제인 구달이 틀렸다’에서는 기후위기의 원인을 인구 증가에서 찾는 학자들을 비판하고 소위 보존주의에 도사린 위선을 드러낸다. 5장 ‘기후 장벽과 생태파시즘’에선 기후위기가 악화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장벽들과 생태파시즘의 역사 및 현황을 파헤친다. 6장 ‘제국적 생활양식: 자동차를 파묻어라’에선 친환경의 선두주자로 포장된 전기차, 여성 노동을 착취하는 패스트패션 등이 이 시대를 어떻게 제국주의적으로 직조하는지 알아본다. 마지막 7장 ‘이야기의 행성’에선 환경운동 세력의 다양한 움직임, 생태사회주의와 탈성장을 지향해온 상상력의 역사를 들려준다.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는 행성 위기를 자초한 생활양식을 그대로 둔 채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우선 우리가 할 일은 파국론에서 벗어나, 압도되지 않고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임을 또한 강조한다. 감춰지거나 모른 척해온 자본주의의 어두운 진실들을 객관적 수치로써 드러내는 동시에, 남반구와 선주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기후정의운동의 역사가 엄연히 대안의 서사로 이 행성에 존재한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로써 보여준다. 생태학의 처음도 끝도 연결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묵직한 한 권으로 풀어낸 이 책은, 지금 이 행성에 시급한 것이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보다 그 대안으로 나아갈 용기임을 절감하게 한다. 이제, 뒤집힌 가치 목록을 정상적으로 뒤집고, 집단 망각에 빠진 세상에서 지워진 이야기들을 불러낼 시간이다.

기후위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거나 인간과 인류에게 그 죄를 떠넘기는 자유주의적 세계관, 탄소 상쇄와 탄소 포집 기술로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녹색 자본주의의 터무니없는 낙관론, 기후위기를 인구 증가 문제로 환원하는 맬서스주의, 세계가 곧 망할 것이라고 공포를 조장하는 파국론, 기후위기를 사회 체제와 무관한 독립적인 문제로 여기는 기후 결정론에 대한 비판이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 목록들이다. […]
이 책을 쓰는 동안 글쓰기를 이끌었던 별자리들은 전문가나 과학자의 통계와 수치 따위가 아니라 목숨을 건 채 추출주의로부터 숲과 강을 지키는 남반구 선주민들, 가장 먼저 부서지는 세계의 모서리마다 삽과 괭이를 들고 자연을 양육하는 농민들, 유례없는 가뭄 때문에 물을 뜨기 위해 폭력의 사막을 횡단하는 아프리카 소녀들, 괴멸적인 기후 태풍 속에서도 태양의 반란을 기획하며 맹렬히 다른 대안을 축조하는 민중들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재난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온다.
그것은 식민주의의 기억을 되살리며 일어난다.

해수면 상승으로 더 이상 농사를 못 짓게 된 벵골만은, 19세기 중엽 영국이 농업 플랜테이션으로 강제 변경한 역사를 갖고 있다. 조금만 물 수위가 올라가도 속수무책으로 물바다가 되는 취약 지역이 된 그 기원에는 농업 상업화와 자본 축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자연 흐름을 변경한 자본주의적-식민주의적 수문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2022년 파키스탄 전 영토의 3분의 1을 물에 잠기게 한 대홍수도 조화롭게 살아가던 목축 지대에 식민주의 자본이 인더스강을 끌어들여 관개 시스템을 구축하고 농업 지대로 만든 것에 그 기원이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호랑이 보존 프로젝트는 가난한 자들을 숲에서 내쫓았다. 조상 대대로 생태적 삶을 구가해오던 전 세계 선주민들이 야생동물 보호구역 바깥으로 강제로 추방되는 사례는, 앞에서 언급된 벵골만뿐 아니라 수많은 곳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숲의 관리인이었던 이들이 갑자기 침입자로 단죄되며 생존을 위해 동물 혹은 동물 보호단체에 맞서야만 하는 이 진풍경은, 자연을 하나의 상품으로 치부하는 신자유주의적 야생 복원 프로그램이 은폐하는 실재이다. 한편 임업 분야에서 주목되는 품종으로, 탄소배출권 구매를 위해서도 널리 심겨지는 유칼립투스는 선주민들의 땅을 점유할 뿐 아니라, 성장이 빠른 품종인 만큼 물을 많이 먹어 토양을 척박하게 하고, 잎이 질겨 원산지인 호주 동물이 아닌 동물들은 먹을 수 없다. 게다가 특유의 오일 성분의 휘발성이 강력해 불씨 하나에 폭발하듯 산불을 야기해 최대 수백 미터까지 날아가 산불을 확장시킨다. 최근 산불 팬데믹에 잠식된 캘리포니아에서부터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산불의 지도를 보면 어김없이 유칼립투스 군락을 발견할 수 있다.
이같이 식민지 개척과 함께 시작된 자본주의의 궤적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기후변화를 그저 ‘인간 활동’이나 ‘인간의 본성’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인식하게 된다. ‘인류세’ 담론이 대표적이다. 2024년 3월 국제지질학연합에서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도래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켰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 ‘인간’은 누구를 가리킬까? 가뭄 때문에 물통을 들고 멀고도 위험한 거리를 횡단하는 아프리카 소녀와 세계 최대의 석유 기업 엑슨모빌의 이사를 과연 같은 인간으로 통칭할 수 있을까? 인류세라는 개념은 식민 지배의 역사를 은폐하며 또다시 식민화하려는 인식의 제국주의라는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녹색 성장에 대한 희망이 필요하다면 다른 책을 찾아라.
전기차도, 착한 소비도 다 허상이다.

자본과 부자들에게 탄소 배출의 압도적 책임이 있는데도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개인적 실천이 중요하다며 힘을 합치자고, 이메일 지우기, 쓰레기 줍기, 재활용, 전깃불 끄기, 텀블러 사용을 강조한다. 그러나 개인의 선의는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스스로 구하지 못한다. 재생에너지로 배터리를 바꾸면 행성 위기가 해소되리라는 것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자동차, 육류, 패스트 패션, 전자기기, 단일 작물 등 추출주의(Extractivism)에 기반한 축적 모델이 지속되는 한. 자연과 인간의 노동력을 귀한 줄 모르고 마구잡이로 흡수하는 추출주의와 제국적 생활양식은 우리의 삶을 재생산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물질에 각인된 고향의 기억을 지우고, 뿌리의 궤적을 은폐한다. 기술 발전이 곧 친환경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발신하는 녹색 자본주의의 상징이 바로 전기차다. 전기차를 구성하는 물질의 경로를 해부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추출주의의 진의를 이해하는 길이며, 또한 우리가 제국적 생활양식을 끝장내지 않는 한 기후-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여정이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석유를 추출해 에너지를 얻었다면, 전기차는 금속을 추출해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광산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사들여 스스로 죄를 사하거나, 풍력 터빈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지만, 터빈과 패널에도 금속이 들어가는바 또다시 금속 채굴량을 올려야 하는 악순환에 봉착한다. 전기차 제조 기업들과 녹색 자본주의자들은 재생에너지 확대로 채굴의 환경 비용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배출, 환경 오염, 지역 사회의 피해는 정확히 산정하지도 않거니와 산정할 의지도 별로 없다. 추출 경제가 낳는 파괴적 피해가 드러날수록 전기차의 위선과 녹색 추출주의의 폭력성이 전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폭력적이고 배제적인 대응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에게 넉넉히 품을 내어주던 숲과 공유지가 울타리로 봉쇄됨으로써 접근하기 어려운 희소재가 된다. 자본주의는 공유가치를 희소가치로, 풍요를 결핍으로, 나눔을 독점으로 변질시킨다. 자연을 ‘공유성’이 아니라 ‘희소성’으로 접근하게 되면, 생태 파괴는 인간의 나쁜 본성이나 인구 과잉 문제로 환원된다. 이 점에서 제인 구달을 비롯한 다수 학자들의 인구 문제 지적은 틀린 방식이며 아울러 인종과 지역에 대한 차별주의를 내포한다는 점에서도 공정하지 못한 방식이다. 동식물과 인간 모두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회합의 관계로서 자연을 이해하면 생태 파괴가 곧 권력의 문제가 되지만, 자연을 고정불변의 희소성을 가진 공간으로만 대상화할 경우 생태 파괴는 곧장 침범과 장벽의 문제로 직결된다. 지구를 망치는 건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다, 인구 과잉이 생태 재앙이다, 따라서 침범과 오염을 막기 위해 보호구역을 요새화하고, 장벽을 올려 이주를 막고, 산아제한을 실시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오늘날 에코파시즘은 기후-생태 문제를 인구 증가의 문제로 환원하는 담론들에 기생하며 그 기세를 확장해왔다. 에코파시즘의 유토피아는 철저히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적이다. 미국의 우생학적 보존주의자들이 노르딕 백인들의 순혈성을 지키기 위해 선주민과 이주민들을 모조리 내쫓고 야생으로 충만한 국립공원들을 만들어냈듯이, 나치의 에코파시즘 역시 이주민들을 추방하고 북방 백인들만을 위한 자연 유토피아를 기획한 것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제 장벽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세계화가 지구를 휩쓸고 상품-자본-노동력이 국경을 넘나들며 국경과 주권이 사라진 듯한 착각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9.11, 금융위기, 이민 위기, 기후재난이 연거푸 들이닥치며 안보와 보호를 위한 장벽들이 우후죽순 건설되었다. 현재 지구상에 대략 74개의 장벽이 존재하며 대부분은 최근 20년간 세워진 것이다.

다른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다른 이야기, 다른 상상력, 다른 쾌락이 필요하다.

인간은 서사의 동물이다. 다른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소비주의의 달콤한 쾌락에 견줄 대안으로서의 쾌락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던질 질문은 이렇다. 이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과연 이 지구는 누구의 것인가? 자동차와 주차 공간을 대폭 줄이고 대중교통을 강화하는 것은 도시를 자본이 아니라 다시 사람에게 되돌려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끌고 거리로 나오고, 사람들은 다시 광장을 되찾을 것이고, 떠났던 새들도 돌아와 둥지를 틀 것이다. 사유화되고 상품화된 도시에 공공성이라는 거름이 뿌려지고 다시 민주주의의 싹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금속 채굴을 위해 온 세계를 덜 파헤치니 당연히 생태계가 덜 파괴되고 해당 지역의 선주민들도 각자의 삶을 평화롭게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생태사회주의, 탈성장을 위해 오늘날 기후운동은 저항과 대안 못지않게 차가운 분석과 뜨거운 조직 과정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춤이 만개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라틴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저항이 있는 곳에 춤이 존재한다. 춤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의 노래이며, 그것 자체가 생명의 증언이다. 바람의 파동에 몸을 맡기는 풀잎들, 짝짓기 춤을 추는 동물들, 그리고 태곳적부터 언제나 춤을 춰왔던 인간들에 이르기까지 지구는 애초에 춤의 행성이다.
다양한 기후 직접행동 단체와 풀뿌리 주민 운동 네트워크들, 1649년 디거스의 반란에서부터, 19세기 말 디트로이트의 감자밭, 쿠바의 농생태학, 그리고 유럽의 R-어반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삶을 재생산하는 근원의 해법으로 출현했던 공유 텃밭과 정원, 숲을 파괴하는 고층 아파트 건설에 반대하던 주부들과 호주 건설노동자연맹 잭 먼디와의 결합으로 시작된 1970년대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결합 등 우리가 불러올 이야기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기후비상사태가 심화될수록 파시즘의 검은 그림자들도 아우성치겠지만 반대로 모두의 우주선을 안전한 대지에 접안하려는 풀뿌리들의 운동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처하는 지구는 이 우주에 딱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례

프롤로그—호랑이 과부

1장 물 뜨는 여자들과 유칼립투스
물고기를 위한 섹스
산불 팬데믹
방화범은 누구인가

2장 기후위기의 심리학
정상성 편향
기후우울증과 솔라스탤지어
왜 외면하는가

3장 이메일을 지우면 산불이 꺼질까?
탄소 발자국 이데올로기
부자들의 환경주의

4장 제인 구달이 틀렸다
문제는 인구가 아니다
보존주의의 실상
야생 보존에서 REDD+까지
탄소 상쇄의 마법

5장 기후 장벽과 생태파시즘
지구 탈출의 꿈
테라포밍의 역사
억만장자들의 엑소더스
생태파시즘
인구폭탄과 맬서스주의
기후 아파르트헤이트, 기후 장벽
구명정과 우주선

6장 제국적 생활양식: 자동차를 파묻어라
파트리스 루뭄바의 어금니
코발트와 테슬라
전기차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자동차가 사람을 몰아내다
제국적 생활양식
여성 노동과 패스트패션
체란의 모닥불 혁명

7장 이야기의 행성
해바라기는 죄가 없다
생태사회주의와 탈성장
태양의 반란
무화과나무와 노동조합
들판의 행성
씨앗 폭탄
화성인이 지구를 정복할 때

에필로그—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참고문헌



지은이 소개 – 이송희일

1999년 첫 단편영화 <언제나 일요일같이>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왔다. 성소수자들의 슬픔, 10대들의 외로움과 아픔,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 등을 섬세하면서 강렬한 연출로 그려온 그는, 2006년 <후회하지 않아>로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을 이끌어 한국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후회하지 않아>, <백야>, <야간비행>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최근에는 SNS에서 기후와 생태 이슈,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활발히 펼쳐 보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제비>, <야간비행>, <남쪽으로 간다>, <백야>, <후회하지 않아> 등이 있고, 얼마 전 고 홍세화 선생과 대담집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을 출간했다.



본문 속으로

한국을 비롯한 부유한 북반구 시민들은 기후 집회에 나가 ‘지구가 죽어간다’, ‘지구를 살리자’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 그 구호를 볼 때마다 한 움큼의 의뭉스러움이 치받쳐 오르곤 한다. 과연 그 지구는 같은 지구일까? 사과와 커피 값을 걱정하는 한국의 시민과 저기 아프리카에서 고행길을 걸으며 물을 뜨는 소녀에게 지구는 같은 공간일까? (23쪽)

지구 경관을 파괴적으로 변경하고 자연과 인간을 노예화했던 식민주의가 바로 기후변화의 뿌리다. 그 연관을 놓치면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는 ‘인간 탓’이라는 인류세의 블랙홀 속을 헤맬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 기후비상사태 속에서 펼쳐지는 ‘산불의 팬데믹’이야말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궤적을 낱낱이 폭로한다. 산불의 시간은 놀랍게도, 해결되지 않은 원한이 다시 귀환하는 시간이다. (34쪽)

오늘날 ‘개인의 책임과 개인적 실천’이라는 규범은 기후-생태 위기를 확대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우리가 분리수거를 잘하는지 서로를 감시하며 알량한 도덕적 자족감에 사로잡힌 사이 코카콜라 자본은 1분당 20만 개의 플라스틱 병을 토해내며 지구 행성의 마지막까지 더럽히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검약과 소비 미덕을 실천하기 위해 서민의 난방비를 올리자고 호들갑을 떠는 사이, 한국의 화석연료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을 두둑이 받아가며 세계 곳곳에서 천연가스를 퍼올리거나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한편으로, 개인 책임에 대한 과중한 무게와 개인적 실천의 무력감이 기후우울증을 부추기거나 아예 위기를 외면하는 무관심의 태도로 전이되기도 한다. 개인 책임의 무한한 쳇바퀴가 우리의 양심을 병들게 하고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경우 ‘개인적 책임’의 이데올로기가 보다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 능력도 개인 책임, 무능력도 개인 책임.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우리의 인생사가 공적인 돌봄과 상호호혜성이 아니라 경쟁과 자기 관리의 고독한 여정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개인 책임의 감옥, 그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 이는 왜 한국의 환경단체들이 신자유주의를 경유하며 점점 더 보수화되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106-107쪽)

우주선에서부터 사막 위의 유토피아 도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슈퍼 부자들이 계획하거나 시도하는 다양한 유토피아 프로젝트들은 그들이 망쳐놓은 세계에서 도피하기 위한 새로운 지도 만들기이다. 기후-생태 위기가 없는 세계, 부유세와 국가 규제 같은 간섭과 잔소리가 사라진 세계, 무산자들의 반란이 존재하지 않는 고요한 세계, 그들이 전적으로 군림하고 지배하는 사유화된 세계, 행성 한계의 파괴적 힘으로부터 벗어난 초월적 세계를 찾아 우주와 사막과 바다를 두더지처럼 샅샅이 뒤져 새로운 땅을 테라포밍하려는 욕망이 바로 이 소란스러운 유토피아 기획의 전모다. (207쪽)

자동차는 인간의 노동력뿐 아니라, 이렇게 지구의 광물과 생물 자원을 끊임없이 추출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흡입한다. 자동차를 구성하는 금속들 하나하나 땅속 깊은 곳에서 채굴될 때마다 자본은 수익을 얻는 대신, 그 자리에는 빈곤과 오염이 남는다. 추출이 가속될 때마다 불평등과 생태계 붕괴가 더욱 악화된다.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릴 때마다 타이어의 검은 입자들이 흩날리고, 아시아의 농부들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고무나무를 쥐어짜고 살충제를 뿌린다. 콩고의 아이들은 검은 갱도 속으로 작은 몸을 옹송그린다. 전기차가 도로 위를 질주할 때마다 안데스 농부들은 갈증에 시달리고 아프리카 선주민들이 고향에서 쫓겨난다. 전기차가 친환경이라는 말이 횡행할 때마다 세계의 멸종위기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된다. 바이오 연료가 청정에너지로 칭송될 때마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선주민들이 땅을 뺏기고 고향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빈자들이 굶주림에 시달린다. 추출주의는 결코 자연 자원을 재생산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추출할 뿐이다. (316쪽)

햄버거 가격 속에는 지불되지 않은 노동력, 아울러 비만과 질병 등 보건 비용도 소비자들에게 전가한 채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햄버거 가격 속엔 생태적 비용이 빠져 있다. 인도의 과학환경센터의 보고에 따르면, 열대우림을 벌채한 땅에서 사육되었거나 그 땅에서 재배된 대두를 먹고 자란 소의 고기로 만든 햄버거의 값은 족히 200달러는 나가야 한다. 이 연구가 시행된 게 1994년이었으니 지금으로 환산하면 햄버거 가격은 훨씬 더 올라가게 될 것이다. 열대우림을 벌채하면 그만큼 탄소 흡수원이 사라지고 생태계가 무너지게 된다. 이는 인류의 미래를 미리 먹어치운 것이기에 그 비용을 산정하기도 쉽지 않다. (338쪽)

잭 먼디와 건설노동자연맹은 그렇게 노동의 사회정치적 소임을 추구했다. 자본주의 노동이 야기하는 생태 문제와 공공성의 침해까지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이른바,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노동자의 경제적 조건에만 정박된 경제적 조합주의를 뛰어넘어,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로서 생산의 사회적 효과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잭 먼디는 이를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유해한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 점점 더, 우리는 우리가 어떤 건물을 지을지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건설노동자연맹은 여학생들을 연구 과정에서 배제하며 차별한 시드니 대학에 녹색 금지령을 내렸고, 게이 학생을 퇴학시킨 맥쿼리 대학에는 핑크 금지령을 적용했다. […] 1970년대 호주에서 일어난 놀라운 성취였다. 당연히 좌·우파 모두 잭 먼디와 녹색 금지령 운동을 증오했다. (400-401쪽)

디트로이트와 쿠바의 도시 텃밭은 경제-사회적 파국이 오히려 도시민의 재생산과 돌봄의 형식을 다르게 구성하는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는 걸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실패했을 때, 자유무역와 상품 체제가 작동을 멈추었을 때, 식량 위기를 비롯해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었을 때, 그 불안과 분노를 파시즘 기계가 먹어치우지 않는 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근원적으로 다시 질문하게 된다. 우리의 삶을 돌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은 무엇인가? 씨를 뿌리는 것, 스스로의 삶을 건사하며 자립하는 것, 다시 땅과 자연과 연결되는 것. 그리고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는 것. (437-438쪽)

우리는 흔히 소비주의를 비판할 때 검소, 절제, 연민을 앞세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왜 당신들은 동참하지 않냐고 날을 세우거나, 기껏 공정 무역과 착한 소비를 하자고 종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의 죄의식을 닦달하는 방식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그것이 대안적 정치를 상상하지 못한 채 ‘채식’, ‘저탄소’, ‘유기농’ 같은 브랜드 소비에 강박된 시장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한계 때문이고, 두 번째는 윤리적 죄의식이 소비주의의 쾌락을 결코 상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콜릿에 서아프리카 아동의 노예 노동력이 함유되어 있다는 걸 안다고 해도 초콜릿은 무엇보다 강력하고 달콤하다. 자동차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걸 눈치챈다고 해도 자동차를 매력적인 지위재로 추앙하는 지배적인 세계관 아래에서 이를 포기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압도적으로 탄소 배출을 하는 부자들의 소비 행위에 누진적인 세금을 물려 형평성을 도모하더라도, 소비가 곧 지상명령으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한 생태 위기는 지속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일상적 욕구와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시장에서 공급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로를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절제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다른 강력한 쾌락, 소비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쾌락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4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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